오데마피게 로얄오크 : 규칙을 깬 자가 새 규칙이 되다.

럭셔리 스포츠워치는 원래 없었다 : 오데마피게 로얄오크가 만든 세계

시계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보셨을 겁니다. '왜 고급 스포츠워치는 스틸인데도 수천만원씩이나 하는거지? 골드나 플래티넘도 아니고 그냥 스테인리스 스틸인데.' 이 질문의 답은 1972년, 스위스 제네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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쿼츠 쇼크, 스위스 시계 산업이 흔들리다

1969년 세이코가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를 출시했을 때, 스위스 시계 업계는 말 그대로 패닉 상태였습니다. 정밀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수백 시간씩 손으로 조립해 만든 스위스 시계가, 배터리 하나로 훨씬 정확하게 돌아가는 일본 전자 시계에 가격 경쟁력까지 완전히 밀리게 된 것입니다.

수많은 스위스 브랜드가 도산하거나 합병을 택했습니다. 살아남으려면 기계식 시계가 쿼츠가 절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가져야 했습니다. 그 '무언가'를 찾는 과정에서, 오데마피게의 CEO 조르쥬 고엥 로시는 한 명의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겁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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냅킨 한 장, 하룻밤의 스케치

1971년 바젤 시계 박람회 전날 밤,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 제럴드 젠타는 오데마피게로부터 급작스러운 의뢰를 받습니다. 내일 아침까지 새 시계 디자인을 완성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. 준비 시간은 단 하룻밤.

젠타는 그날 밤 스코틀랜드 잠수함 헬멧의 팔각형 방수 잠금 너트에서 영감을 받아 특유의 팔각 베젤 디자인을 완성합니다. 노출된 나사, 통합형 브레이슬릿, 그리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오픈워크 다이얼. 이 스케치 하나가 훗날 시계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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업계가 비웃은 가격

1972년 바젤 박람회에서 오데마피게가 로얄오크를 공개했을 때, 업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. 그 당시로써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었기 때문입니다.

케이스 소재는 스테인리스 스틸. 그런데 가격은 무려 3,300달러였습니다. 당시 금으로 만든 드레스워치보다 비쌌던거죠. 스틸 시계 = 저렴한 것이라는 상식이 지배하던 시절, 오데마피게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.

많은 딜러사들이 주문을 거부했고, 언론은 회의적이었습니다. 초기 판매는 참담했습니다. 그러나 오데마피게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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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럭셔리 스포츠워치'라는 카테고리의 탄생

로얄오크가 세상에 나오기 전, '럭셔리 스포츠워치'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. 고급 시계는 정장에 어울리는 드레스워치였고, 스포츠워치는 기능 중심의 저가형이었습니다. 이 둘은 섞일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.

로얄오크는 그 경계를 허물었습니다. 내구성과 방수 성능을 갖춘 스포티한 실루엣에, 섬세한 장인정신과 고가의 가격표를 결합시켰습니다. 개념 자체가 없던 시장을 만들어낸 것입니다.

결과는 역사가 증명했습니다. 파텍필립이 1976년 노틸러스로, IWC가 인제니어로 이 카테고리에 뛰어들었습니다. 지금 우리가 '럭셔리 스포츠워치'라고 부르는 모든 시계들은 사실상 로얄오크의 후예들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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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날 로얄오크 스틸 모델의 공식 소비자가는 약 4500만 원 수준입니다. 그러나 실제로는 공식 리테일에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. 웨이팅 리스트는 수년을 넘어가고, 리세일 시장에서는 정가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됩니다.

1972년 업계가 비웃었던 그 '너무 비싼 스틸 시계'는, 이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시계가 되었습니다.

오데마피게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시계를 잘 만들어서가 아닙니다. 존재하지 않던 카테고리를 만들고, 아무도 믿지 않을 때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였으며, 그 결과가 산업 전체의 규칙을 바꿨기 때문입니다.

파텍필립이 전통의 정점이라면,
리차드밀이 기술과 과시의 극단이라면,
오데마피게는 판을 새로 짠 브랜드입니다.

그리고 그 판 위에서 지금도 모두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.